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 선생님이 학교 미술선생님이었던 시절이라 미술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어쩌다가 어린이 회관에 가서 그림을 그릴 기회가 있었는데 그려본 것은 입구에 있는 거대한(그 땐 거대했다) 물레방아였다.
제출 후 며칠 후에 담임 선생님이 그림을 돌려주셨는데, 조금만 더 다듬으면 참 좋을거 같다는 작품들 속에 내 그림이 있었다. 그걸 들고 집에 돌아와서 주말동안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그림이 더 이뻐질까..
그 때 어린 내가 봐도 부족했던 부분은 물레방아에서 떨어져내려오는 하얀 물거품들이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루종일 머리를 싸안고 고민해봤는데.. (얼마나 고민을 심하게 했으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바깥에는 비도 주룩주룩 왔고.. 뭐 이런걸 다 기억하고 있다)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흰색을 칠해볼까 생각해봤지만.. 그 시절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수채화에는 절대 흰색을 써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수채화는 흰색 대신에 물의 양으로 투명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 그런 고정관념이 내 머리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흰색을 써볼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물레방아 근처에 물칠을 더 해보았지만 번지기만 할 뿐 더 생동감있는 물거품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물칠만 더해진 그림을 다시 제출했다.
며칠이 다시 지나 잘된 작품들을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다. 그 중에 내 눈을 확 끈 것은 (그 당시)그림을 제일 잘 그리던 아이(이름도 기억난다. 영주 -ㅁ-;;)가 낸 것이었다. 나랑 같은 물레방아를 그린 것이었고, 그 아이의 물거품은 생동감있는 흰색이었다. 흰색에 물을 거의 섞지 않고 붓에 묻혀서 날리듯이 채색해서 붓결이 그대로 드러나게 해서 표현한 물거품. 충격이었다.
배운 것을 실천하기로만 따지면 내가 옳다. 시키는 대로 했으니깐. 하지만 작품은 그 아이의 것이 훨씬 좋았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한동안 나는 그 문제로 고민했다.
생각이란 그런 것이다. 배운 것만 가지고 무언가를 하면 한계가 있다. 계속해서 생각하고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가치있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요즘 나를 보면 침체기에 빠져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이다. |